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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숨결

우리 전통음악의 깊고 진한 미감에 젖어드는 특별한 하루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에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고전의 숨결
윤진철의 심청가 생방송 방청 후기
  • 작성자무상초들녁
  • 조회수1447
  • 작성일2017.09.06

윤진철의 판소리-보성소리 심청가 생방송행복한 세 시간 이었다.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국악방송 12층 공개홀을 가득 채운 방청객과 국악을 사랑하는 국악방송 모든 청취자들의 행복 이었다, 믿는다.

 

국악방송이 매달 첫 번째 월요일을 고전음악의 날로 정하고, 그 첫날인 201787일 부터 모든 방송 꼭지에서 하루 종일 24시간 내내 오직 전통국악만 방송하는 특별기획 고전의 숨결에서 특별 편성으로 오전 9시대와 오후 9시대에 국악명인들을 초대하여 이들의 모든 것을 쉬는 시간 없이 세 시간 이상 생방송으로 보여주는데, 그 두 번째 날 94일 오후 9시 생방송이 윤진철의 판소리-보성소리 심청가이었다.

 

네 시간 이상 펼쳐지는 심청가를 초 앞 동냥대목 ~ 삼베전대 / 선인 따라 가는 대목 ~ 모녀상봉 대목 / 화초타령 ~ 눈뜨는 대목 / 세 부분으로 나뉘어 조용복 고수의 명 장단 가락에 실린 윤진철 명창의 생생한 소리가 세 시간 동안 방청객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감동으로 채우며, 부분 사이에 유영대교수의 해설이 더해진 살아있는 판소리 한바탕이었다.

 

윤진철의 아니리(사설辭說)와 발림(몸짓)은 심봉사가 환생 한 것 같았고 심청가 속 등장인물 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방청객의 추임새 열기와 박수 소리는 윤진철을 격정(激情)으로 내 몰았다. “관중을 상대로 사기 치지 말고 참된 소리를 하고 천()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 정심정음(正心正音)을 알아도 되는 소리를 하라는 윤진철의 스승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깨달게 해준, 전통 판소리의 진한 아름다움을 마음껏 만끽한 소중한 참 소리판 이었다.

 

1927년 이 땅에서 방송이 처음 시작되어 201790년 역사에서 공연 중계가 아닌 방송국 공개홀에서 처음 진행한 세 시간 판소리 생방송은 방송역사를 새로 쓴 국악방송의 쾌거이며 끝없이 분출되는 힘이었다. 특별 편성으로 보여준 실험적인 스팟(spot)방송 형태의 <판소리> 생방송 이었지만 고전의 숨결이 국악방송의 본질이며 미래로 나아갈 목표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다.

 

윤진철은 판소리는 인간의 감정과 우주의 자연조화가 함께 들어있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표현이며, 판소리에서 산() 공부는 진도(進度)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밑글읽기(복습復習)하는 학습(學習)인데, 제자들이 애 터지게한다는 안타까움을 털어놓은 <판소리>의 현실도 보여주었다.

판소리는 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로, 한 사람의 소리꾼이 한명의 북치는 사람(고수鼓手) 북장단에 맞추어 긴 음악적 이야기를 소리(, 노래)와 아니리로 엮어 발림을 곁들이며 구연(口演)으로 전하는 최대 8시간의 창악서사시(唱樂敍事詩)이다.

 

판소리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었는데 창법의 특징에 따라 전라도 동북지역의 섬진강 동쪽인 남원, 구례, , 등에서 발달한 판소리는 동편제(東便制), 서남지역의 섬진강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 등에서 전승되는 판소리는 서편제(西便制), 경기 충청도 판소리는 중고제(中古制)’라고 부른다.

 

특히 서편제는 슬픔을 나타내어 듣는 사람의 눈물이 얼굴에 금을 긋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계면조(界面調)에 기교와 장식이 많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있고 헌종(1834-1849)때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철종(1849-1863) 때 까지 활약한 판소리 명창 박유전(朴裕全.1835- 1906)소리를 법제의 표준으로 지칭한다.

 

박유전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총애를 받으며 한양사람들에게 서편제를 바탕으로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이를 널리 각인 시켰다, 말년에는 전남 보성군 강산리(岡山里)로 내려가 살며 <심청가>를 정재근(鄭在根1853- 1914)에게 전수 하였다. “강산제(‘江山制) ”하면 이 정재근의 심청가를 꼽으며 현재 우리가 아는 <심청가>는 박유전의 소리를 기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산제는 서편제의 지나친 애절한 면을 자제하면서 동편제의 웅건함과 중고제의 분명함을 적절하게 배합 하였고 사설도 가능하면 삼강오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정재근의 소리는 조카 정응민(鄭應珉, 1896-1963)으로 이어졌고 이 소리를 아들 정권진(鄭權鎭, 1927-1986)이 받아 맥을 이으며 보성소리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

 

보성 소리의 아름다움은 서편제와 강산제의 바탕위에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에게 각인된 박유전소리의 특징인 양반층 청중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 되어있다. 윤진철은 정권진의 제자 이며 이제는 자기 소리를 하고 싶지만 스승인 정권진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선다면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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